본문 바로가기
독서와 독후감

[20-25] 여행과 독서 - 잔홍즈

by 이윤도 2020. 9. 28.

 

<여행과 독서> - 잔홍즈

 

리디북스 저자 소개

 1956년에 난터우 시에서 출생했다. 타이완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했고, 현 타이완 3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PChome Online의 대표이사다. 전뇌가정(電腦家庭) 출판그룹, 성방(城邦) 출판그룹 창립자. 과거 연합보(聯合報), 중국시보(中國時報), 원류(遠流) 출판공사, 락 레코드, 타이완 CTS방송국, 상업주간(商業周刊) 등 다양한 매체에서 30년이 넘는 경력을 쌓았다. 또한 다수의 책을 기획, 편집한 동시에 <전뇌가정>, <수위시대(數位時代)> 등 다양한 잡지를 창간했다. 저서로는 『유행의 탐구(趨勢索隱)』, 『도시관찰(城市觀察)』, 『창의인(創意人)』, 『도시인(城市人)』, 『인생의 순간(人生一瞬)』, 『푸르던 그 날(綠光往事)』 등이 있다.

 

 

옮긴이_오하나

 중국전매대학 방송연출과를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방송작가 일과 시나리오 번역 업무를 하였고, 글밥 아카데미 중국어 출판 번역 과정을 수료하였다. 역서로는 『매일밤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

 



  대만인 저자의 여행기이다. 그동안의 여행을 바탕으로 책을 내고 싶어 원고를 쓴 후, 아들의 충고를 듣고 설명식 논술 문장을 전부 삭제하여 이야기 위주의 글만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잘 읽힌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 않아 좋았다. 경험, 풍경, 사람, 음식... 정형화된 양식 없이 풀어낸 저자의 이야기는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다는 저자의 여행 철학과도 닿아있는 듯 했다.

 

  읽으면서 절로 배가 고파졌던 책이다. 여행 자체에 대한 사색이나 여행 중 본 풍경과 느낀 감정들도 잔잔하면서 몰입감있게 읽혔지만, 음식에 관한 서술이 남달랐다. 기본적으로 음식에 관한 저자의 식견이 넓은 것이 느껴졌다. 맛이 있다거나 없다정도로만 표현하는 나로서는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저자만큼 풍부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읽었던 여행 에세이 <모든 요일의 여행>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실수로 이상한 버스에 올라탄 순간, 그 이상한 버스를 나도 모르게 선택해버린 순간, 나만의 여행은 직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행과 독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다.'

두 저자를 통해 대단한 건축물이나 풍경 관람과는 다른, 그 지역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의 매력을 알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여행 후 추억으로 남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그 무엇이었다.

 

  여행 전에 읽는 여행지에 관한 독서는 상상에 불과하므로, 여행을 끝마친 후 여행지에 관한 독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저자의 말은 참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을 때의 일이다.(읽다가 놓긴 했다..) 어떤 도서인지 알아보고자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책에 나온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한 블로거의 글을 보았다. 묘사를 읽으며 상상으로 구축하던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인 그 글을 보고 같은 여행지를 가더라도 남기는 의미가 다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즐기는 재미있는 방법이겠다 싶었다.

 

  다만, 잘 읽다가 저자가 걱정되는 대목이 있었다. 후쿠시마 대지진 후에 여행을 갔던 저자의 이야기 부분이었다. 저자의 시선은 따뜻했으나, 안전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안전불감증이 느껴졌다. 특히, 방사능 위험 지역에 들어가는 태도를 '용감하고 패기 넘친다'라고 한 부분에서는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타이완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방사능이나 재난 지역의 실태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 일본인 당사자들보다 더 용감하고 패기 넘치는 듯 보였다.

 

  또한, 아래에 인용한 부분처럼 일본의 지역이 큰 피해를 입고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서로 연대하고, 힘을 내는 모습은 좋았으나 위험해보였기에 이 부분은 다소 대충 읽고 넘겼다. 지역의 부흥을 도우러 온 사람들에게 원전 사고가 난 지역의 식재료를 먹이다니.. 저자는 이런 부분에 경각심이 없던 것인지, 혹은 정말 안전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신문 내용에 따르면, ‘지진 재난 지역의 부흥을 돕는 술집’이 2011년 9월 13일부터 2012년 9월 30일까지 딱 1년간만 영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동북 지역에 중 양조장이 있는 이와테 현, 미야기 현, 후쿠시마 현의 모든 ‘향토주’ 95종을 한데 모아 한 잔 당 480엔에 판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함께 판매하는 안줏거리도 모두 저 세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로만 만들며, 모든 수익금은 피해 지역에 돌아가는 일종의 비영리 술집인 것이다.

 

  책을 읽으면 나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단, 원전사고 후 일본 방문기 빼고 말이다). 목적지 없이 이곳 저곳, 동네 골목골목을 걷고 싶어지는 것이다. 짧은 시간안에 어떤 곳을 봐야한다는 촉박함 없이 느긋하게 그 지역을 알아가는 여행에 대한 갈망을 돋우는 책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순간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다. 나무 아래 있던 작은 술집의 시원한 와인 한 잔, 길 잃은 산속에서 발견한 작은 빵집, 외국의 어느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곳 사람들의 일상 풍경, 이렇게 무의식중에 발견한 조각조각의 순간들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몇 번이고 꺼내 곱씹게 되는 진정한 여행의 순간이다.
나는 우리의 ‘인생’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여행’과 ‘독서’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를 할 땐, 책 속 세계에 빠져 내 인생이 아닌 그들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현지의 색다른 문화와 환경에 섞여들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이것 역시 내가 ‘계획대로 움직이는 여행’이나 ‘안전한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영원히 ‘고향의 품’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면, 반드시 조금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다른 세계와, 다른 인생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그런 순간에 와이너리며 품종 같은 것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한가로운 여름 오후, 광장에 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내버려둔 채 맛좋은 술을 음미하는 그 순간만큼은 나 역시 어느새 토스카나 현지인이 된 기분이었다.
단언하건대, 여행지에 관한 독서는 여행을 끝마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행지에 관해 여행 전에 읽는 것은 ‘상상’에 지나지 않고 여행하면서 읽는 것은 ‘새발에 피’라고 할 수 있다. 오로지 여행을 끝마친 후, 혹은 같은 곳을 여러 번 다녀왔다 하더라도 그 후에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이야말로 그 여행지에 대한 진짜 이해가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로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낭송할 줄 아는 양탄자 상인을 무슨 수로 거절하겠는가?
더 중요한 것은 이 ‘조용한 대지’는 사실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풀숲엔 곤충 우는 소리와 그들이 움직일 때 나는 스스슥 하는 소리, 하늘과 나무 위에는 각종 새들의 울음소리, 습지의 깊은 곳에서는 이름 모를 짐승의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조용해질수록 그 소리는 더욱 더 선명히 들려왔다.
이것이 바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초원의 진상이었다. 평화는 더 이상 평화가 아니었다. 잠시 잠깐의 ‘균형’일 뿐이었다.
누구도 이 밤이 이토록 쓸쓸히 끝나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노래 한 곡을 끝낸 그들을 향해 우리는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아침의 포근한 햇살이 비추는 초록의 잔디 위, 머리 위에는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주변에는 열대지방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순백의 식탁보에서는 상쾌한 비누향이 났다. 곧 우리 앞에 커피가 놓여졌다. 잔을 드는 순간 콧속에 퍼지는 그 향기와 눈앞의 광택이 무척이나 훌륭했다. 바로 이어 나온 열대 과일 주스의 선명한 색깔은 그야말로 나비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이 공원 안에서 상영되는 모든 것은 실제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생존 게임’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우리 인간이야말로 그들의 인생에 아무 관계도 없는 침입자이자, 그들의 진짜 인생을 훔쳐보는 염탐꾼이었다.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여행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떤 장소에서 모종의 경험을 한 여행자는 그 장소와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무릇 지나온 길엔 흔적이 남는다’는 말은 어느 장소를 지난 사람의 발자취가 ‘남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장소에서 보낸 시간과 추억이 그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남겨지는’ 것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