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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20-22]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앤드류 양

by 이윤도 2020. 8. 7.

<보통 사람들의 전쟁> - 앤드류 양

리디북스 저자 소개 : 앤드류 양

  미국 주요 도시에서 신규기업 창업과 안정적 운영을 2년간 지원해주는 비영리기업 ‘벤처 포 아메리카’의 창업자이자 CEO다. 지난 11년간 그와 그의 회사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패스트컴퍼니」 등 주요 언론에 소개되었고, 양은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하는 ‘가장 창의적인 비즈니스인 100명’에 이름을 올렸다. 2016년에는 <제네레이션 스타트업>이라는 영화에 기업인으로 출연하고, 미국 상공부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 시절 백악관으로부터 ‘글로벌 기업가정신 대통령 사절Presidential Ambassador of Global Entrepreneurship’ 및 ‘변화 챔피언Champion of Change’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브라운대학과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컬럼비아대학 재학 시절에는 「컬럼비아 로 리뷰Columbia Law Review」의 편집장을 지냈고, 잠시 변호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기업을 운영하면서 「뉴욕타임스」, CNN, 「와이어드」 등 각종 언론 매체에 출연하고, 하버드와 MIT 등 유수 대학의 초청으로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저서로 『 Smart People Should Build Things』 (HarperBusiness)가 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어날 사회 변화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될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지를 말한다. 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는 미래는 과거 다른 산업혁명들과는 그 규모와 속도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미래라고도 할 수 없다. 현재도 사람의 일자리는 기계로 대체되어가는 중이며 그러한 변화 속에서 영향을 받기 시작한 직업들은 통계로도 알 수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느니, 교육을 받고 능력을 기르면 될 것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정답이 아니다.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새로 생긴 직업의 수요는 과거보다 극히 적으며 재교육으로 재취업하는 성공적인 사례가 없기 떄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하여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은연중에 사로잡혀있는 경제적 문제에 대한 편견 또한 마주할 수 있었다.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본에 따른 계급이 고착화되어가는 시대에 노력이나 개인적 능력만으로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은 요즘 시대를 잘 말해주는 듯 했다. 특히, 과거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던 걸 본 적이 있다. '얼마나 게을렀으면 그 나이 되도록 그 돈이 없을까요' 그 사람은 집안의 돈으로 젊은 나이에 명품을 구매하고 SNS에 올리던 사람이었다. 물론, 이 사람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쫓겨났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 인식도 못한 채 자기 발로 나간다며 방을 나갔던 사람이다. 다음의 구절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다.

‘능력 위주의 사회’라는 논리는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그 말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자동화와 혁신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경제적 곤경에 빠진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패배자라서 불평을 하고 있다거나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덜란드 철학자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가난은 인성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금전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이어서 저자는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를 제기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는 일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소득 불평등과 그에 따른 주거 지역의 분리는 미래 세대가 자신과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없앤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미 이러한 상황이 진행 중이지 않을까? 서울의 강남 8학군이 떠오르는 내용이었다. 노력만으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각 대학 입학생들의 출신지 또는 부모 자산에 대한 통계만 보아도 회의적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과밀화가 진행 중인 서울 공화국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전 국민의 과반이 수도권에 산다. 이대로 한국에서 몇 세대가 지나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어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분열하게 되지 않을까. 극단적 가정 같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게 무섭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시장은 이제 인간을 조종하고 있다. 시장은 문명이 거침없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지만 고삐를 쥔 이가 없다. 기계가 들어서고 노동자는 사라진다. 막연히 생각했던 기술 발전으로 인한 혜택의 전제 조건은 시장이 요구하는 경제 능력임을 깨닫는다. 사람을 위한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저자는 이제 우리 사회가 정해져 있던 틀을 벗어나 어떤 방식으로든 혁신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본 소득제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파격적 복지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정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인이다. 한국에서는 기본 소득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재명 도지사가 기본 소득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 소득 관련 기사들엔 흔히 보이는 댓글들이 있다. 모두가 일을 안 하고 빈둥빈둥 노는 사회가 되면 어떡하냐는 등 정책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실험적으로 기본 소득을 실시한 곳들에서 이러한 현상이 유의미하게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본 소득은 필수적인 생계만을 이어갈 만큼의 액수이기에 그런 듯하다. 나태해지기만 하기보다 오히려 각종 긍정적인 영향이 많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생존에 필요한 돈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는 단순한 스트레스를 뛰어넘는다. 사람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보장된 소득이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정신적 여유를 안겨준다. 재원만 무사히 조달할 수 있다면, 발전할 미래에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정책이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동화와 일자리 상실의 물결은 더는 미래의 암울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한창 진행 중이다.
일자리의 유동성이 떨어지고 일자리 성장이 정체되다 보니 정치적 적개심과 사회악이 자라기 쉬운 여건이 조성되었다.
우리는 지금처럼 인간이 시장을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인간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과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해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능력 위주의 사회’라는 논리는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그 말에서 이미 우리 모두가, 자동화와 혁신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경제적 곤경에 빠진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패배자라서 불평을 하고 있다거나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무실이 갈수록 자동화되고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사무 및 행정 지원 업무 일자리 수만 개가 클라우드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당신 또한 답을 찾으려 해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은 답이 없기 때문이다. 생존과 결핍 모델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을 황폐화시킨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현재 패스트푸드 체인점 직원이 일반적으로 받는 시급 8.90달러를 옹호하던 중 “프렌치프라이를 봉지에 담는 일을 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직원을 시간당 15달러를 주고 채용하느니 3만5000달러짜리 로봇 팔을 사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라는 말을 했다. 로봇 팔은 앞으로 값이 더 내려가고 효율성이 높아질 일만 남았지만, 직원 급여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틀에 박힌 일이냐, 아니냐다. 틀에 박힌 일이라면 어떤 종류의 일자리라도 AI와 자동화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회사는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과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돈을 번다. 갈수록 많은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뜻이 되어 가고 있다.
인간 자체로서의 인간과 노동자로서의 인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꼭 있어야겠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은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한테 가장 좋은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시장의 요구에 맞춰 본성을 바꾸는 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인간성과 일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돈이 연루되어 있다. 가장 인간적인,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을 많이 끄는 일자리나 역할은 보수가 0이거나 0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인가?’가 아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는 당연히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기량과 교육 수준이 낮은 중년의 일자리가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 인근에 수백만 개 새로 생겨날 것인가?’이다.
성공적인 실직자 재훈련 프로그램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말은 100퍼센트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실직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재훈련 프로그램을 제대로 성공시킨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앞으로 닥쳐올 일을 알기 위해 지표에 의존하는 것은 폭풍우가 닥친 뒤에 배의 해치를 닫는 격이다.
우리는 성공은 노력과 인성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성공은 대부분 시험 성적과 집안 배경에 달려 있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 하라리는 “미래에 우리는, 지금 동물을 다루듯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대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되지 않기 위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도록 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 사람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창업의 성공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영국에서 수행한 어떤 연구에 따르면, 창업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공통 특성은 가족이나 친척 또는 유산 등을 통한 자금의 확보라고 한다.
결핍의 마음가짐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를 넘어선다. 실제로 결핍은 정신적 여유를 없애 사람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든다.
풍요의 마음가짐을 갖느냐 결핍의 마음가짐을 갖느냐는 자기가 사는 지역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지역에 따라 경제적 역동성에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거기 사는 사람들의 미래관도 확연히 다른 경우가 많다. 사람의 삶의 방식은 크게 보아 자기가 사는 곳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기술 발달로 늘어난 오락거리, 그중에서도 특히 비디오 게임이 일을 하지 않는 원인의 20~33퍼센트를 차지했다.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일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비율이 남자만큼 높지 않았고, 일자리를 잃으면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하지만 남자들 눈에는 게임이 너무나 멋지게 보여, 일을 포기하고 게임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문제는 나중에 나타난다. 10대나 20대 시절에는 실제로 급여를 주지는 않지만 일과 유사한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멋져 보일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30대쯤 되면 그사이 친구들은 비디오 게임에서 손을 떼고, 당신만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근처에 있는 게임스톱이나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실패자가 되어 있을 수 있다. 허스트 교수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이런 젊은 남성들이 20대 시절에는 행복해하다가도 30대나 40대가 되면 행복도가 뚝 떨어진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증오는 쉽다. 비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증오를 유발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갈수록 다양한 계기로 인해 많은 공동체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고 그에 대한 반응은 더 격렬해질 것이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제도를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오늘날 경제 불평등, 고용 시장 경색, 자동화의 초기 신호 등의 영향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열기는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네덜란드 철학자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가난은 인성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금전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경제 체제는 보통 사람의 운명을 더 낫게 만드는 방향으로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시장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제도의 주인이지 제도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제도가 사람보다 더 커져버렸다.
우리가 사회집단으로서 길을 잃은 이유 중 하나는 시장이 우리 지도자들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인간적 자본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시장을 무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경기 침체기에 성장한 젊은이들이 현 상태의 제도적 자본주의를 좋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악당들이 돈 가방을 챙겨 떠나고 형편없는 일자리만 남는 것으로 끝이 나는 도덕극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기술이 10대 청소년에게 미친 영향은 모두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일자리가 자꾸 줄어드는 세상에서는 자기 관리 능력과 사회성이 인생의 성공에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일과 상관없이 시민이 올바르고 긍정적이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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