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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20-05] 팩트풀니스(FACTFULNESS) - 한스 로슬링

by 이윤도 2020. 2. 23.

 

<팩트풀니스(FACTFULNESS)> - 한스 로울링

 


리디북스 저자 소개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 테드(TED) 최고의 스타강사. 오해와 편견을 넘어 사실을 토대로 한 세계관을 키우고, 이를 일터와 학교는 물론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노력해왔다. 2005년 아들 올라 로슬링,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룬드와 함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사명을 가지고 ‘갭마인더재단(Gapminder Foundation)’을 세웠다. 그동안 금융 기관, 기업, 비정부 기구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했으며, 14번의 테드 강연은 조회수 3,500만을 돌파,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194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태어나, 웁살라대학교에서 통계와 의학을, 인도 벵갈루루 성요한의과대학교에서 공중 보건을 공부했으며, 1976년 의사 자격을 얻었다. 1979~1981년까지 모잠비크 나칼라에서 지역 보건 담당자로 일하면서 콘조(konzo)로 알려진, 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질병을 발견했다. 이 연구로 1986년 웁살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스톡홀름의 의과대학 카롤린스카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에서 세계 보건 교수로 근무하며 경제발전, 농업, 가난, 건강 사이의 연관관계를 집중 연구했다. 새로운 수업과 연구 파트너십을 시작했으며, 세계 보건에 관한 교재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스웨덴 국경없는의사회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 등의 구호기구에서 고문을 지냈으며,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 국제 그룹과 스위스에 있는 세계경제포럼 ‘세계 어젠다 네트워크’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통계의 기쁨〉(2010), 〈겁내지 말 것?인구에 관한 진실〉(2013), 〈겁내지 말 것?가난 끝내기〉(2015) 세 편의 BBC 다큐멘터리를 기획ㆍ진행한 공로로 2011년 그리어슨상(Grierson Awards)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하버드대학교가 수여하는 인도주의상을, 2014년에는 웁살라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람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그는, 이 책을 집필하는 데 몰두하다 2017년 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방송에도 나온 유명한 책 팩트풀니스다. 방송에 나오기 전부터도 눈에 자주 띄었었다. 언제 한번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할인하는 것을 보고 구매해 읽어보았다.

 

  이 책은 사람들이 세상을 사실에 근거해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정확한 근거 자료 없이 세상을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수치에 근거해 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저자가 준비한 테스트를 거치며 나 또한 세상에 대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도 세상을 오해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받은 교육이 오래되었으며, 뉴스로 접하는 소식들의 특수성을 말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들려준다.

 

  생각보다 세상은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적인 소식에 파묻혀 지내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통계자료가 나타내는 수치에 근거해 바라본 세상은 TV를 통해 본 혼란하고 무섭기만한 세상이 아니었다. 인류가 이루어낸 발전을 보며 새삼스럽게 놀라움도 느꼈다. 여태 내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왔는지 재고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물론, 좋은 세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책에 대해 어떤 사용자가 '세상에 어두운 면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믿을 수 없다'며 남긴 글을 보았다. 저자는 이 세상이 좋다고만 하지 않는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죽고, 기아가 생기며 전염병이 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의 규모는 분명히 과거보다 나아졌음을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비극적인 일을 당한 당사자들에게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라는게 아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다소 차갑게 보일 수 있는 행동으로 전체적인 상황을 개선한 저자의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개인으로는 감당 못할 다수의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이 말이다. 자신이 마주한 아픈 환자들의 치료에만 집중했다면 그를 만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치료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차가워보일지라도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이 결국 전체에 더 큰 도움이 됨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림짐작만으로 잘못 생각하던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근래에 느끼는 대표적인 생각으로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떠올랐다. 사람이 사는 방식은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은 소득의 수준으로부터 나온다. 저자는 어느 대륙이든 소득의 수준이 같다면 생활 방식도 유사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넷상에서 사람들이 중국인 중 일부를 보고 중국인 전체를 오해하며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 나오는 상류층의 중국인을 보고는 아무런 말을 안하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극적인 자료를 보고 해당 국가의 국민 전부를 하찮게 바라보는 시선은 대단히 거북하다. 그런 시선이라면 우리나라 또한 충분히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책을 읽었다고해서 바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런 현상에는 인간의 본능도 개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알려준 우리를 속이려는 본능들과 자료의 함정들을 잘 기억한다면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타당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우물 안에 계속 갇혀 살기보다 올바르게 사는 데 관심이 있다면, 세계관을 흔쾌히 바꿀 마음이 있다면, 본능적 반응 대신 비판적 사고를 할 준비가 되었다면, 겸손함과 호기심을 갖고 기꺼이 감탄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계속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 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주목하는 본능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다. 하나는 과거를 잘못 기억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사건을 선별적으로 보도하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황이 나쁜데 세상이 더 좋아진다고 말하면 냉정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려면 그걸 나타내는 곡선이 어떤 형태인지 확실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곡선이 눈에 보이는 부분 너머로 어떻게 연장될지 안다고 단정할 경우, 잘못된 결론에 도달해 엉터리 해법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머릿속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이 들어올 틈이 없다.

 

목숨을 구하는 문제나 삶을 연장 또는 개선하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자원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자원이 무한하지 않은 한(자원은 절대 무한하지 않다) 머리를 써서 지금 있는 것으로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게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다.

 

수치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수치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도 없다.

 

절대로 숫자 하나만 달랑 남겨두지 마라, 절대로! 하나의 수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믿으면 절대 안 된다. 수가 하나라면 항상 적어도 하나는 더 요구해야 한다. 그 수와 비교할 다른 수가 필요하다.

 

우리는 나열된 모든 문제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중 더 중요한 문제가 몇 개 있다. 사망 원인에 관한 문제든, 예산에 관한 문제든 나는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문제에 먼저 주목한다. 더 작은 문제에 시간을 쓸 때는 먼저 이렇게 자문한다. 80%는 어디에 있지? 왜 이 문제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할까? 그것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목숨을 놓고 이런 셈을 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셈을 하지 않는 것이 되레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의 수만 보면 내가 그걸 잘못 해석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수를 비교하고 나눠보면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국가별 '총'배출량을 기초로 중국과 인도를 기후변화의 주범이라고 조직적으로 비난할 때면 더러 오싹하다. 그것은 중국 전체 인구의 몸무게 합이 미국보다 크다고 해서 미국보다 중국에서 비만이 더 심각하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국가는 달라도 소득수준이 같으면 삶이 놀랍도록 닮았고, 국가는 같아도 소득수준이 다르면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임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책 전체를 채울 수도 있다.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거든 내 지식을 부모나 조부모와 비교해보거나, 자식이나 손주와 비교해보라.

 

나는 전문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다. 가장 분명한 첫 번째 한계는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만 전문가라는 점이다.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가뿐 아니라 내가 만난 거의 모든 활동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후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자신이 몰두하는 문제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성장과 보건 의료 발전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와 모순되는 현실에 부딪히기 쉽다. 따라서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민주주의가 우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보다 민주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지지하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극히 단순한 해법에 갇히면 좀 더 복잡한 진실을 보려 하지 않고, 우리 힘을 적절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언론인을 악마화하지 마라.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계를 크게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서양인이 마치 자기 손에 리모컨이 있어 버튼만 누르면 다른 수십 억 인구의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정말 기겁할 일이다.

 

우리에겐 비난할 사람이 필요하고 어떤 외국인 한 명이 그 병을 옮겼다면, 그 외국인이 속한 나라를 주저없이 통째로 비난하곤 한다. 자세한 조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위 구절에 해당하는 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창 퍼지기 시작할 때 어느 웹사이트든 댓글창에서 볼 수 있었다.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걱정할 대상을 제대로 알자는 뜻이다. 뉴스를 외면하라거나 행동을 촉구하는 활동가의 말을 무시하라는 뜻도 아니다. 소음을 무시하고 중요한 세계적 위험에 주목하자는 뜻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냉철함을 잃지 말고, 그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지지하자는 뜻이다. 다급함 본능과 모든 극적 본능을 억제하라.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으로 바라보고 상상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 스트레스받기보다 진짜 문제와 해결책에 좀 더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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