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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19-18] 7년의 밤 - 정유정

by 이윤도 2019. 11. 3.

 

<7년의 밤> - 정유정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열두 살 서원, 세상은 그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올가미를 덧씌운다. 친척집을 전전하던 끝에 결국 모두에게 버려진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한집에서 지냈던 승환을 다시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소설가이자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었던 승환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서원에게 아버지의 사형집행 확정 소식이 칼처럼 날아들고 서원에게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찍은 잡지 '선데이매거진'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내몬다. 서원은 세간의 눈을 피해 승환과 떠돌이 생활을 하며 승환에게 잠수를 배우며 살아간다. 

  세령호의 재앙으로부터 7년 후, 등대마을에서 조용히 지내던 승환과 서원은 야간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청년들을 구조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간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된 서원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상자를 배달받는다.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소설은 승환이 쓴 것으로 7년 전의 세령호의 재앙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데…  

- 알라딘 책 소개 中

  저자 정유정은 소설가이며 1966년 전남 함평 출생이다. 대학 시절에는 국문과 친구들의 소설 숙제를 대신 써 주면서 창작에 대한 갈증을 달랬고, 직장에 다닐 때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홀로 무수히 쓰고 버리는 고독한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아이의 세계에 발을 딛고 어른의 창턱에 손을 뻗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의 성장 모습과, 스스로 지나온 십대의 기억 속에서 그 또래 아이들의 에너지와 변덕스러움, 한순간의 영악함 같은 심리 상태가 생생하게 떠올랐으며 덕분에 유쾌하게 종횡무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심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2007년 삼 년에 걸친 구상과 집필 끝에 탄생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5천만 원 고료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등단 이후 쏟아지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치밀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내 심장을 쏴라』 집필에만 몰두해 다시 1억 원 고료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리디북스 작가 소개 中)

  보안팀장 최현수와 그의 아들 최서원, 마을의 대지주 오영제와 그의 딸 오세령, 보안팀 직원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오승환. 그들의 이야기이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의 전개 방식 또한 특이했는데, 주인공이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오승환이 쓴 소설 원고를 펼치자 7년 전 세령호 사건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책을 읽는 형식이었다. 나는 사건의 구체적 인과관계를 몰랐던 서원과 같이 7년 전 일의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굉장히 흡입력이 있었고 때로 정해둔 독서시간을 넘어 책 읽는데 정신이 팔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12살 소녀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댐을 방류하여 마을 주민들을 몰살시킨 미치광이 살인자. 이 표현 뒤에서 우리가 어떤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이유로도 이 행동은 싸이코패스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겠다 싶다. 그러나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고 은폐, 피해자 아버지의 복수, 아들에 대한 사랑...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최선인 줄 알았던 일련의 선택들로 최악의 길을 걸은 최현수라는 인물을 보게 된다. 

  우리 모두 그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잘못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일이 커진 경험 말이다. 당장 마주친 쓴 맛을 피하기 위해 달콤한 사약을 마시는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어릴 떄일수록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 바로 앞의 일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경험한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유혹, 죄를 밝혔을 때 받아야 할 대가와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또한, 피해는 자신만이 아닌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들 또한 볼 수 있다는 생각도 거든다. 그러한 피해를 피하기 위해 내딛은 한 발자국으로 인해 우리는 파멸에 이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사실과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나'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이는 인물 설명에 딱 들어맞는 접속사인 듯 싶다. 마치 '그는 마을 주민들과 어린 초등생을 살해한 살인자이다. 그러나..' 라고 표현한다면 책의 내용을 가장 짧게 표현한 한 문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양한 소식을 접하지만 표면적 내용만을 알 수 있을 뿐, 그 속에 표현된 사람들의 심리 혹은 사연은 알 수 없다. 듣는다해도 몇 문장으로 표현된 글을 읽고 그러려니 넘길 뿐이다. 이 소설을 읽고난 후 몇 줄의 글 아래 묘사된 사건사고 속에 어떠한 '그러나'가 숨어있을 수 있음을 깊이 느꼈다.

우리는 최선의ㅡ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ㅡ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책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 속의 인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공감하는 과정은 곧, 현실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기술이 발전하고 sns를 사용하며 보여지는 모습들에 의해 자기 자신이 초라해보일 때, 한 권의 소설 속에 나타난 인물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성을 발견하고 공감하며 위로받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도서 편식으로 인해 소설을 잘 읽지 않아 왔지만 앞으로는 종종 읽어야 겠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에는, 안개가 짙고 비가 내리는 금요일 밤에는, 인적이 없고 어두운 호숫가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눈을 뜨고 "아빠"라고 속삭여 올 때에는, 자기를 찾는 전화벨이 심장을 두들기는 순간에는, 흔히들 무의식이라 부르는 '혼돈'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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