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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19-20] 걷는 사람, 하정우 - 하정우

by 이윤도 2019. 11. 17.

 

<걷는 사람, 하정우> - 하정우

 

  하정우의 걷기에 대한 철학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준 에세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건강한 그의 철학들이 좋았다. 사소한 것들도 풍성하게 느끼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가 언급하는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도 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옮겨주는 기계의 사용을 싫어한다는 하정우의 말에서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임을 느꼈다. 빠르게 움직이며 생산성을 높이길 요구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다리로 걷는 한 걸음을 통해 저자는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속도를 회복한다. 그에게 걷기란 단순한 유산소 운동을 넘어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에도 가까워 보였다.

  답이 없는듯한 문제에 부딪히면 일단 걷고 본다는 태도는 꼭 배우고 싶다. 힘들 때 가만히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으면서 득을 본 적이 없다. 아파오는 머리를 가지고 취미인 독서를 하기도 쉽지 않다. 두 다리만 있으면 가능한 기분전환을 왜 그동안 생각 못했을까. 정작 걷기와 조깅을 즐기면서도 이를 필요할 때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식도 노력이 필요하고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조급함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걸으며 몸에 활력을 주고 나의 속도를 찾아가는 저자의 태도를 배우고 싶다.

  나는 예전부터 삼성헬스를 해왔는데, 저자가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하듯이 효과가 아주 좋다. 생각보다 활동량은 정직해서 특정 걸음수를 넘어가면 살도 빠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걸음 수에 대한 욕심도 생기고 컨디션에 따른 하루 활동량은 얼마가 좋을지 등의 기준도 생긴다. 중간중간 휴식할 때 엎드려 누워있지 않고 밖에 나가 10분이라도 걷게 된다. 작은 자투리 시간들을 활용해 걸으면 생각보다 많은 걸음이 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걷기와 조깅을 몇달 전부터 즐기고 있었지만 이 행위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고 있는지에 대한 사색이 부족했던 듯 싶다. 내가 왜 꾸준히 걷고 싶었는지, 내가 무얼 느껴온건지 저자가 말해준 경험 속에 내 모습이 보였다.

 


돌아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걷기밖에 없는 것만 같았던 시절도 있었다. 연기를 보여줄 사람도, 내가 오를 무대 한 뼘도 없었지만, 그래도 내 안에 갇혀 세상을 원망하고 기회를 탓하긴 싫었다. 걷기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농담처럼 시작된 국토대장정은 걷기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가 길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내 몸의 땀냄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꿉꿉한 체취, 왁자한 소리들, 먼지와 피로, 상처와 통증... 오히려 조금은 피곤하고 지루하고 아픈 것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리 대신 바퀴에 의지해 잽싸게 이동하길 요구하고, 머리와 손은 더 빨리 움직여 생산성을 높이라고 다그친다. 이런 와중에 내 다리를 뻗어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는 행위는, 잊고 있던 내 몸의 감각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

 

'아,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하지만 생활 속에서 '한 보만 더 걷는다' '웬만하면 바퀴보다는 내 다리로 간다'는 원칙을 정하면, 걸음수가 착착 쌓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봄과 가을의 햇빛이 다르고 여름과 겨울의 나무에서 각기 다른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즐거움이다.

 

내 주변의 배우들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잘 살펴보면 영락없이 직장인이나 운동선수 같은 일과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느슨하고 여유롭게 사는 보헤미안보다는 중요한 경기를 앞둔 스포츠선수나 회사의 명운이 걸린 PT를 준비하는 직장인들과 더 닮아 있다.

 

유머는 삶에서 그냥 공기처럼 저절로 흘러야 한다.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면 이런 유머가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유머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몸에 익은 습관은 불필요한 생각의 단계를 줄여준다. 우리는 때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갇혀서 시간만 허비한 채 정작 어던 일도 실행하지 못한다. 힘들 때 자신을 가둬놓는 것, 꼼짝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감옥의 수인이 되는 것, 이런 것도 다 습관이다. 스스로 키워놓은 절망과 함께 서서히 퇴화해가는 것이다. 하지만 걷기가 습관이 되면 굳이 고민하지 않고 결심하지 않아도 몸이 절로 움직인다.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나는 생각들을 이어가다가 지금 당장 답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편이다. 살다보면 답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만드는 문제들을 수없이 많난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장 해결하고 싶은 조급함 때문에 좀처럼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답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배우의 삶은 정말이지 녹록지 않다.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던 일상이 사라지는 경험은 의지로 간단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걷던 길, 나를 편안하게 대하고 내가 거리낌없이 대하던 모든 사람들, 내 집처럼 드나들던 가게, 아지트 그 모든 것들이 싹 바뀐다. 모든 것이 불편해지고 어색해지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그 속에서 연약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판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경험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흔히 개인의 의지나 노력으로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다.

 

별일 없으면 자빠져 있지 말고 걷기라도 하자는 것이 유일한 나의 생활 신조였다.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머리를 굴려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렇게 기도한 이후로 이상하게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에든 더 담대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명백한 사실은, 내게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일종의 무모함을 선물해주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부지런하게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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