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영하는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등을 출간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리디북스 작가소개 中)
올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꽤 오랫동안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지금도 올라있는 곳이 있다). 교보문고에서 초반부를 참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되었다. 원래 유명 작가이기도 하지만 <알쓸신잡> 방송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작가 김영하의 산문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행 산문집이지만 여타 흔한 여행 관련 도서들처럼 경험 위주의 서술이 아니였기에 좋았다. 여행과 글쓰기, 여행과 삶 등 여행을 통한 사색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특히, 다양한 이야기들의 인용을 통한 인문학적 사유는 매력적인 내용이었다. 소설가의 관점에서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행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즐겨 떠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 또한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고 나서 느낀 바처럼, 나는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서도 여행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책에서 언급했듯이,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근심을 떠나 날 현재에 머물게 해줄 여행,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림으로써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여행의 경험이 없다는게 아쉬웠다.
책을 읽으며 느낀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생각치 못한 것을 얻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아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고, 평소 하던 생각에 갇힌 발전없는 삶은 재미가 없다. 삶이 계획한대로만 흘러간다면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경험하고 생각하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기회도 놓칠 것이다. 내가 모르기에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은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니는 신념보다 자기도 모르는 믿음에 더 좌우된다.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된다.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운다. 이전 투숙객의 기억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전날 남겼던 생활의 흔적도 지워지거나 살짝 달라져 있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여행자는 어디로 여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그 나라와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또한 그 도시의 정주민들이 여행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방식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맞춘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현실에서 무질서하게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배운다. 죽음과 재난, 사랑과 배신 같은 일들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닥쳐올 때,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지켜내야 하고 그럴 때 이야기가 우리에게 심리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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