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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19-13] 모든 요일의 기록 - 김민철

by 이윤도 2019. 9. 8.

 

 

  남자 이름이지만 엄연히 여자인 저자는 카피 한 줄 못 외우지만 엄연히 카피라이터이다. 그 흔한 공모전 한번 안 해보고 광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잡다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안다는 이유로 2005년, 광고대행사 TBWA KOREA의 카피라이터가 됐다. 광고를 너무 몰라서, 기억력이 너무 지독해서 살아남기 위해 회의 시간에 치밀한 필기를 시작했고, 그 회의록을 바탕으로 2011년, 《우리 회의나 할까?》라는 책을 냈다. 박웅현 CCO 팀에서 11년째 일하며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SK이노베이션 ‘혁신을 혁신하다’ 등의 캠페인에 참여했다. 15초라는 찰나의 시간을 위해 한 달이 넘게 고민하는 세계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 (리디북스 작가 소개 中)



  저자 김민철의 취미와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접했다. 읽으며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책과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 편이고, 사진 찍기에도 큰 흥미는 없으며 음악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가진 곡이 없다. 하지만 책과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서울의 한 카피라이터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느낌은 신기했다.


  앤 페디먼의 책 내용을 인용한 부부의 서재 합치기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재밌었다. 살면서 이혼을 고려해본 적이 없었는데 서재 정리 방식의 차이를 두고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대목은 수긍이 가서 웃음이 터졌다. 책에 관한 애정과 내가 쏟아온 애정의 역사를 말해주는 책장에 대한 생각은 저자와 묘하게 비슷했다. 비록 책장이 다 차 버려 전자책으로 옮겨왔지만 종이책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저자가 나 대신 설명해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글쓰기에 관해선 쓰며 삶을 이해한다는 구절에 공감했다. 방황하던 시기부터 나도 그랬다. 알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속에 쌓인 나도 몰랐던 부정적 감정들을 적으며 배설했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고, 왜 힘들어했는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속의 내가 답을 주었다. 이는 군대에서도, 그 이후에도 내가 무엇인가를 적는 행위의 이유가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대단한 에세이도, 작품도 아니지만 그저 적을 뿐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내 가방엔 쓸데없는 내용으로 채워져 가는 노트가 한 권 들어있다.


  공감하진 않았지만 음악과 여행 등 저자의 다양한 취미생활에 대한 내용은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던 나는 이런 취미는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받은 기분이었다. 특히 사진이 그랬다. 카메라는 없지만 폰은 있지 않은가. 저자가 말했듯 카메라를 쥐면 다른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찍을 것을 찾는 눈은 우리가 놓치는 많은 풍경들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매력적이었다. 핸드폰 카메라로라도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찍고 저장해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에세이를 읽는 재미는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다른 서적들도 물론 그렇지만, 실존하는 사람의 경험과 감정 등을 직접적으로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진 에세이를 읽지 않아왔다. 남이 사는 이야기를 읽어서 무얼 하겠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었다. 짧은 생각이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을 하며 위로도 받고 새로운 생각도 한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결국 독서의 목표가 아닐까 싶다.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든 철학을 살펴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얻을 수 있았다. 앞으로 에세이 분야의 도서도 즐겁게 읽어볼 것 같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기억난다.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이 책들 덕분에 잠깐 동안이라도 변헀던 나는 기억난다. 그게 내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어쩌면 전부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인간을 배운다.

 

나를 구원할 의무는 나에게 있었다. 매일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음악과 나 사이에 생긴 결정적 순간은 평생 그 음악에 달라붙는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나는 카메라를 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쥐게 되었다는 걸.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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