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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독후감] 평균의 종말 - 토드 로즈

by 이윤도 2020. 11. 18.
<평균의 종말> - 토드 로즈

리디북스 저자 소개
토드 로즈(Todd Rose)는 교육신경과학 분야의 선도적인 사상가로서,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지성·두뇌·교육(Mind, Brain, and Education) 프로그램과 개개인학 연구소를 맡아 이끌고 있다. 스위스 생체모방공학 연구소에서 부교수로도 활동 중이다.중학교 때 ADHD 장애 판정을 받은 뒤 성적 미달로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그 이후 대학입학자격 검정시험을 통과해 지역대학에 입학했다. 야간 수업을 들으며 주경야독한 끝에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인간발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수과정을 마쳤다.
구글, 애플, TEDx, SXSW(창조산업 박람회),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으며, 비영리단체인 개개인의 기회연구소(Center for Individual Opportunity)를 공동 설립해 직장, 학교, 사회에서의 ‘개개인성의 원칙’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책 제목이 낯익었다. 예전에 한창 독서모임을 가입하고 싶어 둘러볼 때, 어느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다음 모임 책이라며 소개한 글을 봤던 기억이 났다. 평균이라는 개념은 어딜가나 등장하는데 평균의 종말이라니. 호기심이 동했지만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미루어 두던 책들이 한두권이 아니었으니 마음 속에만 간직했었다. 그러던 와중 이용하고있던 월정액 전자책 서비스인 리디셀렉트에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평균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도 훨씬 넓고 깊었음을 알았다. 나는 평균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아왔으며, 그게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평균주의적 사고 속에 함몰되어간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에서는 평균을 활용한 시스템을 대체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자격증 위주의 교육과정 등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워낙 긴밀하게 연계되고 고착화된 평균주의적 시스템을 깨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평균이라는 개념이 파고든 사회시스템과 인식은 너무나 공고하며 간편해서 쉽사리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현 시대에서 부르짖고있는 공정이란, 같은 시험의 점수로 줄을 세워 뽑기를 요구하니까 말이다. 특정 사람의 자질만을 보고 뽑았다라고 한다면 당장 채용비리 논란이 터질만한 사회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평균주의적 개념을 벗어난 방법으로 평가를 받을 수 았을지 막막하지만, 평가 방식에 의심을 품게된 것만으로도 일단은 족하지 않을까? 당연해보이던 것에 의심을 품고, 확인해보고, 고쳐나가는게 인간사 발전 모습이니까. 평균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합리성에 대해 의심을 갖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평균주의적 시스템이 실패작인건 아니다. 오히려 성공적이다. 아주 효율적으로 기능했고 사회는 체계를 갖추고 빠르게 발전해왔다. 다만, 그 가운데 스러져 간 개개인들을 생각해보자.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개인은 행복해지는가? 저자는 이제 어느정도 충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개인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 시스템과 이에 연계한 사회 시스템의 정착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사회의 인재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서 사회와 개인 모두가 윈윈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예전에 어디선가 보았던 말이 떠올랐다. 모두가 자신의 강점을 갖고 있으며, 다만 그것을 발견한 사람과 발견하지 못한 사람만이 있다는 말이었다. 단순하게만 생각해온 재능의 범주를 넓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놓친다. 같은 행위라도 다른 맥락 또는 상황에서 다른 수준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을 단순하게 보고자하지만 세상은 단순하지 않으니까. 세심하게 살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세상도 말이다.


이 책의 주요 전제는 언뜻 보기엔 단순하다. 즉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될 테지만 평균적인 신체 치수 따위는 없듯 평균적인 재능, 평균적인 지능, 평균적인 성격 같은 것도 없다. 평균적 학생이나 평균적 직원도 없고 그 점에서라면 평균적 두뇌 역시 없다. 이러한 일상화된 개념들 모두는 잘못된 과학적 상상이 빚어낸 허상이다.
인간의 잠재력은 우리의 현 시스템이 가정하는 것처럼 한정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각의 사람들을 종형 그래프상의 한 점수로서가 아닌 개개인으로서 이해할 도구다.
케틀레가 착안해낸 이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바야흐로 평균의 시대Age of Average를 열었다. 다시 말해 평균이 정상이 되고 개개인이 오류가 되며 과학이 정형화에 정당성을 각인시켜주는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현시대의 여러 석학, 정치인, 사회운동가 들은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거듭거듭 지적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지적과 정반대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기름칠이 잘 돼 있는 테일러주의 기계처럼 잘 돌아가도록 개선돼오면서 애초 구상에서의 설계 목표를 위해 가능한 한 한 방울까지 효율성을 모조리 짜내왔다. 그 결과가 바로 학생들을 사회에서 적절한 위치에 배정시키기 위한 효율적 등급화다.  
등급화와 유형화 같은 기본적인 평균주의 방식의 대부분조차 인간이 냉동 클론이라는 식의 가정을 취했다. 바로 이를 이유로 들어 몰레나는 이런 가정을 에르고딕 스위치라고 이름 붙였다. 이 에르고딕 스위치라는 것은 일종의 지적 ‘유인술’로 생각하면 된다. 말하자면 과학자, 교육가, 기업 리더, 채용 관리자, 의사가 평균주의의 유혹에 속아 개개인을 평균과 비교함으로써 개개인에 대해 뭔가 중요한 것을 알아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지만 정작 실제로는 개개인에 대해 중요한 것을 모조리 무시하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응용과학의 150년은 케틀레의 원초적 착각에 의해 이미 예견돼 있었다.13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그 어떤 여성의 몸과도 일치하지 않는 ‘노르마’, 그 어떤 사람의 뇌와도 일치하지 않는 뇌 모델, 그 누구의 생리에도 꼭 들어맞지 않는 표준화 치료 요법, 신용할 수 있는 개개인들에게 불리한 점수를 부과하는 금융 신용 정책, 전도유망한 학생들을 걸러내버리는 대입 프로그램, 비범한 재능을 과소평가하는 고용 정책 등이다.
우리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깨닫고 우리의 장래성에 대한 자의적이고 평균 중심인 견해의 굴레에 속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들쭉날쭉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사람들 그룹의 평균적 행동의 예측이 아닌 개개인의 행동 예측에 관한 한 특성은 사실상 별 역할을 못 한다. 사실 공격성과 싸움에 휘말리기, 외향성과 파티 즐기기 등 성격 특성과 행동 사이의 상호 연관성은 0.30을 넘는 경우가 좀처럼 없다. 0.30이라면 얼마나 약한 상호 연관성일까? 상호 연관의 수리로 풀어보면 이 정도의 상호 연관성이라면 성격 특성이 행동의 9퍼센트를 설명해준다는 의미다.
맥락의 원칙에 따르면 개개인의 행동은 특정 상황과 따로 떼어서는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으며 어떤 상황의 영향은 그 상황에 대한 개개인의 체험과 따로 떼어서는 규명될 수 없다.21 다시 말해 행동은 특성이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의 독자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표출된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평균적 경향이나 ‘본질적 기질’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취해서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자제력은 일종의 본질적 특성처럼 여겨지지만 키드가 증명했듯이 자제력 역시 맥락적인 것이다.
우리는 아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이들의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탓에 제한된 정보를 기반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한다.
원래 아메리칸 드림은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었다. 그보다는 잠재력을 한껏 펼치며 살아갈 기회와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차원의 문제였다. 미국은 이 꿈이 시민 대다수에게 가능했던 최초의 국가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꿈은 어느 한 국가나 국민만의 꿈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꿈이다. 그런데 이 꿈이 평균주의에 물들어 오염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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