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북스 저자 소개 中 (저자 유시민이 말하는 유시민)
저는 쉰다섯 살 먹은 중년 남자입니다. 고향 경주와 대구에서 20년, 서울과 경기도에서 26년을 살았습니다. 5년은 공부하느라 독일에서, 3년은 군 복무를 위해 강원도 화천에서 보냈습니다. 1년은 법무부에서 주는 밥을 먹으며 책만 읽었습니다. 대학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읽은 책으로 말하면 역사학도나 문학도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군 복무 시기와 유학 시절을 제외하면 성년이 된 후 인생의 절반은 운동(movement)과 글쓰기 사이에서, 나머지 절반은 정치와 글쓰기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무엇이 줄기였고 무엇이 가지였는지 분명하게 나눌 수가 없습니다.
조금 늦었다 싶지만 이제부터라도,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지식과 정보를 나누는 일입니다. 십여 년 전에는 분노를 참지 못해 정치의 바리케이드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을 버릴 수 없어서 그 바리케이드를 떠납니다. 지식소매상으로서, 일상의 모든 순간마다 나름의 의미와 기쁨을 느끼며 살고 후회 없이 죽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다.
참 늦게도 읽었다. 몇년 전즘에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만 했던 책이다. 3년 전에 <알쓸신잡> 방송을 통해 저자를 알게 되었었다. 본 방송을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영상 클립으로 보았다. 민주화운동 시절, 서울대 재학 중 감옥에 다녀온 경험과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의원을 거치며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이력이 독특했다. 나는 <항소이유서>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감옥 안에서 펜과 종이로 바로 적어내려간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런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어떨까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책을 읽고난 후 떠오르는 단어는 '재미', '자유의지', '일, 사랑, 놀이' 정도였다. 저자는 즐거운 삶, 자유의지로 선택한 삶, 일과 사랑, 놀이라는 3요소가 조화된 삶을 추구한다. 이는 존엄한 삶, 행복한 삶, 품위있는 삶을 바라보는 저자에게 판단 가치가 되는 요소들이다. 나는 이중에서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삶인가라는 저자의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다. 결과가 경제적으로 좋거나 명예롭더라도, 자유의지로 택하고 행한 길이 아니라면 재미있고 행복하기 어렵다는 말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매트릭스의 알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어디까지가 내가 자유의지로 원한 것이며, 어디까지가 주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었던건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이 시국에 취준생으로 혼란한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천천히 알아가보아야 할 듯 싶다.
정치인으로서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유시민 작가가 정치계 은퇴를 선언하며 정치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한 뉴스 기사를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내 시선엔 정치의 중심에 가까이 있던 분이었고, 적지 않은 기간 일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 것일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고충을 알게 되었다. 죄책감으로, 책임감으로 버티고 일해온 그 시간들을 읽으며 정치적 입장을 떠나 소명의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아쉬울 것이 없는 정치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욕을 먹으며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사람들도 유시민 작가처럼 자신의 생각에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일까? 뉴스를 보며 답답해하던 나지만, 그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듯 하다.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을 풀어내는 에세이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준다. 이번 독서로 나는 40대 유시민 작가의 어깨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온 것들을 만나 반가웠고, 생각치 못한 것들을 읽으며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인생 선배에게서 진득하게 이야기를 들은 기분이다. 역동적으로, 열정적으로, 하지만 다소 후회스럽게 살아온 저자의 삶은 좋은 참고가 되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천천히 생각해보아야겠다.
나는 열정이 있는 삶을 원한다. 마음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자유롭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여정까지, 그렇게 철이 덜 난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 내 삶에 단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그렇게 사는 게 나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자유로움과 열정, 설렘과 기쁨이 없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 존엄한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자기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위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년은 아기가 아니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고, 상처를 입어도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자기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임이든 사회의 책임이든, 닥쳐온 고통은 일단 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세상을 원망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다. 누구도 그 짐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소설도, 영화도, 연극도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가 크게 달라진다. 어떤 죽음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의미, 품격이 달라진다.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이 길수록 죽음에 대한 생각은 더 큰 가치가 있다. 아직 젊은 사람일수록 더 깊이 있게 죽음의 의미를 사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는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임을 인식하면서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그 삶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가는 정신의 태도와 능력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착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기본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계를 타인의 자비심에 의존하면 존엄한 삶을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교하지 말자. 철학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지 돼지와 비교해서 훌륭한 게 아니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중요한 건 노는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나 승리를 목적으로 삼으면 놀이가 더 이상 놀이가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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