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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독후감

[19-24] 심미안 수업 - 윤광준

by 이윤도 2019. 12. 28.

 

<심미안 수업> - 윤광준

 

리디북스 작가 소개

  사진에서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활동하는 아트 워커. 우리나라 최초로 예술대학이라 이름 붙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색깔 있는 내용으로 일세를 풍미한 《마당》과 한국의 독보적인 예술잡지 《객석》의 사진을 담당하며, 한글 디자이너로 유명한 안상수 아트 디렉터 등과 작업했다. 이후 웅진출판에서 초대형 프로젝트 ‘한국의 자연탐험’을 진행하며, 한국의 미를 기록하는 도큐먼트 사진의 시대를 여는 주요 사진가로 활동했다.

  기자보다 글 잘 쓰는 사진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996년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여행에 나선다. 본격적인 예술 탐구가로서의 인생을 살기 위한 반전이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편견 없이 수용하며,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추적하는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함께한다. 스스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보다 일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즐기는 ‘딜레탕트(예술 애호가)’이기를 바란다.

  오디오 평론가로도 유명하며, 10여 년 넘게 일상의 탁월한 사물들인 ‘생활명품’을 발굴하고 소개해왔다. 파버카스텔, 메르세데스-벤츠 등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비롯 노바티스, 네이버, 신세계 스타필드 등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사진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국악에도 조예가 깊어 사야국악상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 디자인의 원류인 바우하우스 연구를 위해 독일 전역을 돌고 있다. 현재 이함캠퍼스의 콘텐츠 에디터로 공간과 전시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에 예술 분야의 유례없는 베스트셀러 『잘 찍은 사진 한 장』, 사물에 대한 체험과 취향에 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선보인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비롯 다수가 있다.


  나는 호불호의 기준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적당히' 즐기는 나는 어느 것을 마주치든 적당히 넘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허한 기분이 들었다. 특정 인물, 분야, 캐릭터 등에 빠지는 주변인들을 보며 부러웠다. 취향에 맞는 무언가를 찾아내고 즐기는 이들이 느끼는 즐거움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독서 말고 빠져들 무엇인가를 찾고 싶어서 도움이 될까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예술 자체를 즐기는 전반적인 자세부터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즐기는 방법과 각 분야들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준다. 과거의 나라면 별 생각 없이 넘어갔을 시각적, 청각적 작품들의 의미를 곰씹으며 이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강요하지 않아 어렵지 않았고, 덕분에 즐기기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을 깰 수 있었다. 특히,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분야들이란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 삶이 고단할 때 마주한 아름다움이야말로 더 소중하고 오래간다는 저자의 말은 지금의 나에게도 좋은 취미로 즐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기쁨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나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인지를 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감흥이 일지 않았던 것이다. 감각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만이 있었을 뿐, 의식적으로 즐기려는 노력이 부족했었다. 이 내용은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넘어, 내가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반성을 이끌어 내주었다. 적극적인 노력 없이는 어떤 대단한 작품도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듯이, 일상적인 삶 또한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 책을 집어들 적엔 독서 외에 빠져들 만한 다른 취미를 하나쯤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취미를 특정 분야로 한정하고 가진다는 것 또한 좁은 시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에서 다양한 분야를 설명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능력, 심미안을 훈련하고 키운다면 어떤 것도 나의 취미가 되고 취향을 가질 수 있다. 굳이 나의 취미가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위해 경험해보지도 않은 것들에 마음을 닫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취향은 지속되는 성장이며 다양하고 변덕이 심할수록 좋다고 했다. 취향이 단단해질수록 삶은 구체성을 띄며,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디테일을 채울 수 있다고 하였다. 여지껏 허한 마음을 느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즐기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겠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에게 다가온 문장들에 밑줄을 치고, 독후감에 함께 기록해둔다. 이 책은 밑줄을 정말 많이 그었기 때문에 첨부하는 내용이 많다. 밑줄이 많다면 덜 중요해보이는 내용을 삭제하지만, 이 책은 빼고 싶은 내용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리라. 어렴풋이 관심은 있었지만, 어렵다는 생각에 미뤄두었던 다양한 분야들을 편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선뜻 접근하지 못했던 분야들에 대한 흥미는 이 책이 충분히 일으켜 주었으니, 이제 각각의 분야를 더욱 깊게 탐색하는 건 나의 몫이다.


삶의 여유가 있을 때 무엇인가를 즐기는 것보다, 삶이 고단할 때 마주한 아름다움이야말로 더 소중하고 오래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기쁨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예술 애호가로 살면서 느낀 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도 모두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내가 의미를 둔 것만이 나에게 그 미적인 감흥을 허용한다. 명화도, 명곡도, 일상의 작은 연필 하나까지도 그렇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에는 순서도 서열도 없다. 잘 몰라도 즐겁고, 처음 접했는데도 황홀한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일방적 수용이라면, 예술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개입된 적극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기억이 더 강하고 확대된다. 신이 만든 자연 못지않게, 인간의 예술이 주는 위안이 더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거대한 감동도, 결국엔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변치 않는 게 아니다. 아름다움은 지켜야 할 경전이 아니다. 언제든 새로운 시도 앞에 감탄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심미안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는 커가는 능력이다.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은 감탄하는 법이 없다. 모두 비슷해 보인다. 구별하려는 생각이 없으면 세사이 그저 평평하게 보일 것이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건 어찌 보면 불행이다. 작은 차이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을테니까.

 

미의 가치는 상대적인 비교로 분명해진다. 여러 비교를 통해서 '미적인 것'에 대한 기준이 생겨난다.

 

미술을 잘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좋아하는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미술관이든 상관없다. 유명한 미술관이 아니어도, 미술관을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보는 태도가 달라진다.

 

아름다움이란 어떤 대상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이 어디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에 따라 그 대상은 다채로운 빛깔로 번지게 된다. 미술관은 이 힘을 극대화해놓은 이상의 공간이다.

 

심미안을 기르려면 자신이 잘 모르는 낯선 대상과 마주했을 때의 첫느낌이 중요하다. 그 느낌을 어떻게 내 마음에 자리매김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를 산다. 바로 지금의 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익숙한 판단이란 과거에 근거한 경우가 많다. 예술은 이런 과거의 판단으로부터 계속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누가 시키거나 알려주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을 표출하는 일이 필요하다.

 

명작에는 사실 이유가 없다. 보고 나면 너무 좋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역설적으로 명작일수록 왜 좋은지 말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 자꾸 직접 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명작은 기본적으로 긴 세월을 견딘 작품이다. 명작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졌고,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세월이 아주 많이 흘러도 남아 있을 것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불멸성을 이미 갖췄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시간에 맞서 변하지 않는 대상과 마주할 때의 경험은 강렬하다. 뛰어난 예술품 앞에서는 누구든 겸손해진다.

 

아름다움은 세월을 이기는 힘이다. 오늘 거절당했어도, 내일 반겨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람들이 시대와 불화했던 예술가들에게 더욱 애틋한 마음을 갖는 이유이다.

 

그림도 음악과 똑같다. 들어서 쾌감을 주는 건 좋은 것이고, 불쾌한 건 나쁜 음악이다.

 

빨리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찬찬히 흝어보며, 내 눈이 먼저 가는 것부터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이해할 충분할 시간을 주면, 감흥이 올라오는 데 도움이 된다. 아무리 위대한 그림도 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다가가지는 못한다.

 

추상은 출발 자체가 그릴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상대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결국 추상화는 '의도성'이 매우 강한 그림이라고 새각하면 편하다. 그 의도가 형태에 없을 뿐이다. 다른 요소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색채가 대표적인 예지만, 재료, 재질, 기법 등도 의도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추상화만큼 감상하기 어렵다고 하는 게 바로 동양화이다.

 

오늘날 과거의 동양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의 우리에게는 그 시대의 상징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동양화야말로 그 실제 크기로 보아야 작든 크든 여백의 미를 제대로 느끼게 된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규정된 시간의 질서에 공감하는 일이다.

 

클래식은 비교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고, 그 욕망을 실제로 확인해보려는 노력이 있을 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이다.

 

어떤 음악 장르든, 어떤 곡이든 체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갖게 될 깊이를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취향은 다양하고 변덕이 심할 때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

 

좋아하는 음악이 생기면, 그 옆의 것으로 옮겨 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보일 것이다.

 

여느 예술 분야보다 더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악의 세계이다.

 

취향은 지속되는 성장이다.

 

취향이 단단해질수록 삶은 구체성을 띤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디테일을 채우는 방법이다.

 

음악을 즐기는 이들은 고독이 두렵지 않다. 오롯이 자신의 감각에만 집중할 때 사람은 누구나 철저하게 혼자다.

 

취향은 곧 갈증의 세계이다.

 

인테리어는 궁극적으로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워두어야 할 공간을 생각해내는 일이다. 안정된 인테리어는 아무것도 놓아두지 않은 빈 공간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끼게 만든다.

 

좋은 공간을 즐기는 기쁨은 가져서 얻는 만족감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난 체험에서 오는 신선함에 가깝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건축이 달라진다.

 

세월을 딛고 살아남은 건축물의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얻은 나무, 돌, 흙과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좋은 건축가일수록 디자인보다 재료에 신경 쓴다.

 

익숙함의 가치를 이겨내는 새로움이 등장하기란 쉽지 않다.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민감해진다는 것은, 자신이 놓여있는 조건과 맥락에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일이 바로 건축이다.

 

놓여 있는 조건은 같은데 만들어낸 '무엇'이 달라지는 건 사진이나 미술이나 같다. 기계를 사용한다 해도 나오는 결과물은 한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더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자기감정과 자기 관점에 충실한 사진일수록 공감이 크다.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대부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세상이다. 때문에 찍는 이의 내면이 느껴지느냐 아니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흔적은 시간에 맞설 유일한 대응이 된다. 사진은 시간 앞에 스러질 모든 것의 운명에 맞서, 그 모습을 남겨두는 것으로 위안을 주는 예술이다.

 

사진이 가두어낸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사진기 밖에 있었던 것들을 상상해보는 것. 그리하여 그 이미지가 붙들어놓은 시공간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사진의 미학을 대하는 태도이다.

 

팔리지 않아도 실패라 하지 않는 게 예술의 불문율이다. 자유롭게 무슨 짓을 하든 용서되는 인간 세계의 유일한 일탈 통로가 예술인 것이다. 그런 만큼 새로움만이 최고의 선으로 인정받는 게 예술이다.

 

하나의 사물 안에 인류 지식의 진화가 모두 담겨 있다는 관점을 가지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물의 형태에 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미적 감각은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아름다움을 선택하고 골라내는 능력이다.

 

산다는 것은 매일을 사는 데 필요한 물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 어차피 물건과 함께 뒹굴고 살아야 한다면 좋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채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도구와 물건이 기능만 좋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항상 쓰는 연필, 볼펜, 만년필 같은 필기구는 디자인과 만족도가 특별하게 높아야 한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의 감각까지 더해지는 물건인 까닭이다.

 

소유가 목적이 되면 결핍감이 생겨난다. 일상의 사물은 어쨌든 소유가 아니라 사용에 목적이 있다.

 

일상에서 적절하게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어야 정말 좋은 것, 정말 필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야 좋은 취향과 좋은 삶이 형성된다.

 

어떤 것이든 좋으나, 그거시 아니면 안 된다는 선별의 기준을 갖게 되면, 그것이 곧 심미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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