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작가는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대중 강연, 방송 출연, 신문 기고 등으로 유명한 스타 인문학자이다.
삶은 자신만의 임무를 발견하고 실천해나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요즘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너무 쉽게 타인의 평가와 기준에 스스로를 맞추곤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의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마음가짐이다.
이 책은 주옥같은 28개의 아포리즘과 서울대 배철현 교수의 깊이 있는 해석이 더해진 인문 에세이로, 고독, 관조, 자각, 용기로 이어지는 자기 성찰의 4단계를 제시한다. 매일 아침, 인생의 초보자가 되어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롯이 나만 보이는 그곳에서 삶에의 열정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리디북스 도서 소개 中)
아포리즘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의미한다. 책에 수록된 28개의 아포리즘은 어렵지 않다. 간결하기에 더욱 잘 읽힌다. 저자의 해석 또한 어려운 내용이 아니며 각 주제당 내용도 긴 편이 아니라 속도감 있게 읽힌다.
인문학 에세이는 정답이 없다. 읽다 보면 동의하는 내용도 있지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나온다. 이 점이 매력이 아닐까. 책을 읽어 내려가며 단어들을 뜯어보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은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다. 지금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문장, 동의하지 않는 문장,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문장 등이 있다. 글은 이해가 어렵지 않지만 내용을 곱씹느라 느리게 읽히기도 한다.
아쉬웠던 점은 고대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등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어원과 신화 등을 이야기함에 있어 도입으로는 좋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도 다른 언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적혀있어 지적 과시로 보이기도 했다.
또한 아포리즘 에세이를 처음 읽어본 입장에서 책을 읽고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하지만 인상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었고 주제가 느껴지지 않았음은 인문학적인 주제가 다소 진부함으로 느껴졌을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나의 경우 책 내용 전부가 나에게 유익했다 말할 순 없지만 분명히 자극을 준 내용들이 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부분에 대한 사유를 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내용이 한 줄이라도 있었다면 의미 있는 독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28개의 아포리즘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문장이 한 개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검증된 인문학자이다. 하지만 19년도 1월 논문 표절 의혹에 휘말린 가운데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해당 의혹에 대하여 해명하지 않은 채 다양한 뉴스 기사가 나오고 있다. 책의 내용과 저자의 행동 간의 불일치가 느껴진 건 나뿐일까? 실천 없는 지식은 얼마나 허무한가? 우리 모두 도덕을 배웠음에도 지키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다. 유명 인문학자인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매일 아침 기꺼이 인생의 초보자가 된다던 저자가 논문 표절 의혹에 휘말려 학술서가 절판되고 직무정지를 당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웠다.
오만에 빠져 눈 뜬 장님이 되었을 때 찾아오는 불행이 있다. 이 불행을 그리스인들은 네메시스라 한다. 네메시스란 흔히 복수로 번역되는데, 원래 의미는 '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그 어떤 것을 받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앙갚음, 보복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을 때 감수해야 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배철현 교수는 표절 논문으로 서울대 교수직을 지켜왔다. 표절 의혹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도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한 뉴스 기사를 보자 이러한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주어진 일을 하지 않아 일터를 떠났다. 자신이 원장으로 있던 교육기관 건명원에서 직무정지를 받았다. 학술서들은 절판되었다. 그리고 본인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었다. 우리가 알지 못함보다 알아도 실천하지 않음을 경계해야 함을 저자의 일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저자 관련 사건과는 별개로 책을 읽고 감명 깊었던 부분이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시간과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스승이다. 그리고 이 분리된 시간과 공간을 고독이라고 한다. 고독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불안해하는 외로움의 상태가 아니다. 의도적인 분리의 상태이자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고독해진다. 요즘 들어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특정 분야에 매진할수록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때로는 외롭게 느껴지는데 의도적인 분리의 상태라고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신이란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소리, 온 마음을 집중할 때 비로소 들을 수 있는 침묵의 소리임을 깨닫는다. 엘리야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된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의 내용 일부가 생각난다. 해당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죽은 후에 신에게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진다. 신은 알려주었지만 따르지 않았다 답한다. 신은 자기 자신의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입을 빌려 말했었던 것이다. 신의 소리는 주변에 있으나 자신이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어주던 편이었다. 자신의 진심을 아는 것도 쉽지 않다. 내 마음은 내가 안다 생각하지만 허심탄회하게 다 꺼내어 보면 스스로도 놀란다.
우리는 대개가 위대한 시인이나 성인들이 만들어놓은 빛나는 별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자기 것이라는 이유로 외면한다.... 이렇게 남의 것이나 따르는 삶이 계속되는 한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참신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진부는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하는 끔찍한 훼방꾼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권위에 기대는 오류를 떠올렸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말하는데 주저했다. 내가 말하려는 주제에 대하여 정답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분야의 권위자가 정답을 내려놓았을 텐데 내가 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권위가 정답을 의미하진 않는다. 권위에 기대는 오류란, 논쟁이나 글쓰기에 있어서 권위 있는 사람의 진술이나 개념에 의존해 논증을 하려는 것이다. 자연과학이나 공학처럼 답이 존재하는 분야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답이 존재하는 분야가 아님에도 권위자와 의견이 달라 위축되는 모습은 고쳐가야 한다. 독후감을 쓰며 내 의견을 넣는 행위가 이에 대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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