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1977년 뉴욕 출생이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철학, 과학, 문학 등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문들의 교차점이라 생각한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예일대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에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장밋빛 미래를 눈앞에 펼쳐지려 할 무렵, 그는 암에 걸렸다. 하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투병 생활을 하며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2년간의 투병기간 동안 뉴욕타임스와 스탠퍼드메디슨에 에세이를 기고했고,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3월,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리디북스 도서 소개 中)
'숨결이 바람 될 때'의 간략한 줄거리는 책을 소개하는 SNS 콘텐츠를 통해 알고 있었다. 독서는 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해 준다. 젊고, 유능하며 사회적 성공을 눈앞에 둔 사람이 다가오는 죽음을 마주하였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만약,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죽음이 다가옴을 안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폴 칼라니티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우리는 언젠간 죽는다. 다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뿐이다. 하지만 폴 칼라니티는 대강의 예상이 가능했다. 그런 그가 남은 삶을 살아낸 모습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버텨내던 레지던트 시절 이야기, 암 진단으로 인한 좌절과 환자의 입장이 되며 느끼는 감정들. 병에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간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내용이 슬프지 않을까 싶었지만 책의 절반을 넘어서도 덤덤히 읽었다. 번역체여서 그런 것인지,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슬프게만 바라보지 않은 시선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감정이 터진 부분은 마지막 즈음에서였다. 저자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며 그의 건강이 얼마나 급속히 나빠졌는지 느껴졌다. 글이 끝나리라곤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딸을 위한 글을 남기고 끝이 났다. 어떤 문학적인 표현보다 글의 예상치 못한 끝맺음이 나에겐 슬프게 다가왔다.
폴 칼라니티의 글이 끝나고, 그의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가 쓴 글이 이어진다. 그리고 옆에서 본 폴 칼라니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폴도 글을 잘 쓰지만, 그의 아내인 루시의 글 또한 감동적이었다. 폴 칼라니티의 글 맺음에서 북받친 감정은 루시의 글을 읽으며 터질 지경이었다.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들의 추억 속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다. 책의 앞부분에서 폴이 쓴 글을 읽으며 건강에 대한 특별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 글의 끝맺음을 예상치 못한 이유도 그의 건강이 심각히 악화되었음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시의 글을 통해 당시 폴의 상태를 알게 된다. 앞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그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자세로 글을 썼는지 비로소 꺠닫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도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한 그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원래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다룬 에세이라면 읽어보고 싶었다. 올해 초,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3회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내가 어머니의 암 진단 소식을 듣고 느낀 감정을 이 사람과 가족들도 느꼈을까 궁금했다. 그 결과는 비슷했다.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감정을 이입했는지 모른다. 꼭 암이 아니어도 병원에서 병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면 공감할 감정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경험이 없어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언젠간 죽을 테니까. 죽음을 앞두면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낼지 자문할 기회를 준다. 또한 어떤 감정을 겪게 될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병원 입원 중에 옆 환자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 피식했다. 항암제를 처방한 의사는 항암의 부작용을 느껴는 봤겠느냐고. 항암의 부작용이 별 것 아닌 듯 웃으며 넘기는 회진 때 의사의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암 진단을 들은 날, 내가 상상하던 미래 전부가 무너진 느낌이었다. 계획대로 차분히 흘러가던 일상은 사라지고 이 문제 외의 모든 문제는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때가 생각이 난다.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폴은 암 진단 이전에도 자신이 언젠간 죽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는 몰랐다. 암 진단 이후에도, 이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불안해졌다. 죽음이 조금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 상황에서 이 정도의 성찰을 해낸 저자가 놀라웠다.
의사는 병에 걸리는 느낌이 어떤지 추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병원에서 살아보며 특별히 공감이 많이 갔다. 글로써 적힌 각종 통증들은 직접 경험하는 자만이 진짜 아는 것이다. 의사는 단지 배우고 접한 대로 판단할 뿐이다. 환자로서 공감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심지어 보호자까지도 이 부분은 힘든 지점이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이 문장에서 깊고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계속 나아갈 수 없지만 계속 나아가겠다는 다짐. 폴은 이 생각을 가지고 집에서 통증과 함께 무기력하게 보내던 투병 생활 대신 수술실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폴은 말한다. '이게 바로 나고,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냥 충분히 비극적이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 독자들은 잠깐 내 입장이 되어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처지가 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조만간 나도 저런 입장이 되겠지.' 내 목표는 바로 그 정도라고 생각해.....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지.
그의 목표에 맞게 읽을 수 있었다.
불치병에 걸렸어도 폴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나는 이럴 수 있을까? 현실을 부정하며 삶을 부여잡으려는 모습보다는 목적과 의미로 가득 찬 날들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고 싶다. 나를 위해서, 주변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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